태국 생태농업연수를 다녀와서
황선숙
이틀 전 밤에 전여농 정책국장님 전화를 받고서야 한 달 전 태국생태농업연수 자료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꾸벅꾸벅 졸면서 함께 했던 사람들의 말씀들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중입니다.
늘 일에 치여 살다가 그 일을 다 그대로 두고 길 나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와 전화기도 끄고, 시간도 보지 않고 정해진 일정 속에 사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6박 7일중 이동시간을 빼면 실제 수린에 머무는 시간은 3박4일 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매 시간이 더 소중했습니다.
연수는 어느 나라나 농업과 농촌이 처한 환경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공동의 적과 싸워야 한다는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방콕에서 수린으로 이동하는 7시간의 버스길.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이어진 풍경들을 지나면서 본 궁금증들은 저녁 먹고 통역친구들과 앉아서 오래도록 물었습니다.
수린에서 보낸 3박 4일 동안 많은 농민들을 만나고 농장 방문을 하고, 쌀 협동조합을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소득은 역시나 현장에서 만나는 농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정부가 농민에게 득이 되지 않았다는 태국의 농업현실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농민들이 씨앗의 주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대안농업네트워크에서 활동하시는 농민 바띠파짜띠 씨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종자에 관한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종자가 없으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유기농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이 직접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처음엔 전여농에서 하는 것처럼 지역 실태조사(쌀 유전자원 조사)를 했는데 농민들이 관행농사로 정부 보급종을 심었기 때문에 씨앗이 다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태조사 후 중앙조직네트워크랑 공유, 씨앗을 심고 종자를 모으고 나누는 일을 계속 했답니다.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지역농민들이 토종씨앗을 심고 지역에서 전국에서 토종축제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수린지역은 지역품종을 장려해서 심고 있는데 쌀의 경우만 해도 20여 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현장의 농민들이 씨앗을 고르는 수업을 하는데 보는 내내 전여농의 토종씨앗 지키기 활동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중 몇이나 이 농민들처럼 살아있는 현장의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80 먹은 여성농민 한 사람의 씨앗에 대한 기록만 만들어도 기본 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린농업협동조합의 기본활동은 라이스 미 정미소 운영이라고 합니다. 이 조합의 기본 목표는 소농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 농민의 자립이 목표라고 합니다. 생태농업 연수에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들은 말은 “지속가능한 대안적 발전”이었습니다. 이 조합은 ‘협동조합을 하면서 느낀 보람은 무엇인지, 농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란 질문에 한 여성농민에게 이런 답을 내놓게 했습니다.
“스스로의 행복, 먹는 것도 풍족, 쓸 돈도 풍족, 빚도 줄었구나!”(보딴싼미 이장님)
쌀 협동조합을 방문했을 때, 매니저에게 양현희 순천 사무국장이 물었습니다. “협동조합 활동으로 조합원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우린 우선 빚이 줄었고, 농지는 더 이상 줄지 않았으며, 농민들이 더 나은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농민이 먼저 좋은 음식을 먹고 나니, 소비자도 더 좋은 음식을 먹게 된 것이지요.”
어떤 정부도 농민에게 득이 되지 않는 태국의 농업상황에서 수린지역 농민들은 소농들의 단단한 연대로 씨앗의 주인이 되고 땅을 살리고 생태를 복원해내며 자연과 공존하며 스스로 자립해가며 행복한 농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생태농업을 기반으로 한 쌀 협동조합을 만들고 그 쌀을 공정무역을 통해 70%를 수출하니 그 연대의 힘이 놀라웠습니다. 생태농업이라는 것이 기존 관행의 역사에 맞서 부단하게 스스로와 싸우고, 가족들과 싸우고, 기존 관념들과 싸우는 것이라는데 그 과정을 거치고 땅이 살아나면 수린지방 농민들이 만나고 있는 농민으로 사는 행복함의 경지를 만날 수 있나봅니다.
한국의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아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농민을 만나기 힘든 일인데, 수린의 농민들은 하나같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감동이었습니다.
혼작을 가능하게 하는 농사짓기 좋은 태국의 자연환경이 참으로 부럽기도 했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환경이지만, 한국의 농촌환경에 맞는 생태농업을 부단히 실험해 나가겠습니다. 전여농 일정이라 강행군일거라 짐작은 했지만 매일 매일의 일정에 대한 평가의 시간을 나누면서 여농 사람들과 짧은 시간을 보내고도 사람들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연대감, 저 분들이 전여농을 이끌고 있는 자랑스러운 회원들이구나 감사했습니다.
더 까마득해지기 전에 우리 토종씨앗에 대한 자료 만들어야 되겠지요? ^^ |